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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비밀의 방
누군가에게 깊이 사랑받는 것은 힘을,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는 것은 용기를 준다 (Being deeply loved by someone gives you strength, but loving someone deeply gives you courage). -노자
호그와트에는 여름이 한창이었다. 버터 같은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해그리드는 올여름 태어난 보우트러클의 수가 신기록을 세웠다고 보고했다. 스프라우트는 신기한 식물들을 수집하기 위해 이집트에 가 있었고, 미네르바는 다가오는 새학기 준비로 분주했다. 덤블도어는 이번 방학 내내 신비스럽고 영문을 알 수 없는 태도를 취했는데, 그야 늘 그랬으니 딱히 새로울 것은 없었다.
세베루스는 꺅꺅거리는 조그만 머저리들도, 채점할 과제도, 그밖에 교수라는 혐오스러운 직업과 관계된 그 무엇도 없는 호그와트 성의 여름을 즐기고 있었다. 그는 미네르바가 행정업무를 떠넘길까 두려워 스태프룸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플리트윅 교수도 거기서 수업계획서를 고치는 데 여념이 없을 것이다. 그 대책 없는 낙관주의자라면, 대체 왜 세베루스가 교수로서 최저한의 의무 이상을 하지 않으려 드는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는 그의 나이 스물한 살일 때 개강 1주일 전에 작성한 수업계획서를 여전히 쓰고 있었다. 학생 녀석들이 그로부터 무엇을 배우든 혹은 배우지 않든, 그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학생들의 부재조차 그의 기분을 나아지게 하지 못했다. 덤블도어가 마침내 새로운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를 채용한 것이다. 지난 열한 번과 마찬가지로, 그는 세베루스를 교장실로 불러 차와 달콤한 간식을 대접한 후, 그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없도록 불쾌한 소식을 전했다—그가 또 다시 세베루스의 요청을 무시하고 또 다른 얼간이를 채용했다는 소식을.
이번에는 심지어 보통 때보다 한층 더 심한 얼간이였다.
“길데로이 록허트라고요?” 마법세계와 머글세계를 통틀어 세베루스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언어에도, 지금 현재 그가 느끼는 충격과 혐오감을 전할 수 있는 욕설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는 덤블도어에게 그대로 말했다.
“그게 말이네,” 덤블도어는 소심한 척 입을 열었지만, 세베루스는 단 한 순간도 그 연극에 속지 않았다. “지난번 지원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를 감안한다면, 톰에게 조종당할 가능성이 전혀 없을 법한 사람을 고르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네. 세베루스, 잼 도넛 하나 어떤가?”
세베루스는 분홍색 아이싱이 얹힌, 아마도 라즈베리 잼이 들어있을 도넛을 무시했다. 그것은 한입만 먹어도 당분 과다섭취로 혼수상태에 빠질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사실 현재 그들의 대화 주제를 떠올리면 차라리 정신을 잃는 게 솔깃하게 들릴 지경이었다.
“그가 혹여 죽어 나가더라도 크게 아쉬워할 사람이 없다는 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이겠지요,” 그는 할 수 있는 한 가장 신랄한 말투로 덧붙였다.
“이런, 세베루스,” 덤블도어는 그를 책망하듯 말했지만, 세베루스가 느끼기에 딱히 진심이 담겨있지는 않았다. 길데로이 록허트 얘기를 하고 있는데, 누가 진심으로 그의 의견에 반대할 수 있겠는가?
“그 자는 차마 눈 뜨고 봐줄 수가 없어요.” 세베루스가 말했다. “말 그대로요. 번쩍이는 금박장식이 달린 옷을 입고 다닌다고요.”
“금박장식은 나도 좋아한다네.” 덤블도어가 콧수염을 씰룩거리면서 대꾸했다. 오늘 그가 입은 로브는 짙고 선명한 보라색이었는데, 반짝이는 별자리 지도가 수놓여 있었다. 염소자리는 오른쪽 소매, 거문고자리는 어깨 부근에서 빛나고 있었다.
“교수회의 자리가 무척 재미있어지겠군요.” 세베루스가 덧붙였다. “지금이라도 미네르바의 표정을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덤블도어는 미소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곧 사라지고, 그의 시선은 벽난로 안에서 타오르는 장작으로 흘러갔다. 불빛으로 인해 그의 홍채가 희게 빛났다. 세베루스는 덤블도어가 불을 피우지 않고 지냈던 여름들을 기억했다. 덤블도어도 나이를 먹고 있었다. 초상화 속 과거 호그와트의 교장들이 자는 척하며 그들을 흘낏흘낏 살폈다. 언젠가는 그의 앞에 앉아있는 노인도 저 위의 초상화들 틈에서 졸고 있는 척하게 될 것이다. 그는 덤블도어의 초상화가 덤블도어 본인의 절반이라도 총명하고 음흉하며 불편하리만치 통찰력 있을지 궁금했다. 만약 어둠의 군주가 진정한 종말을 맞이하기 전에 덤블도어가 죽어버린다면, 부디 그렇기만을 바라야겠지만.
“무언가 변화가 있나?” 덤블도어가 물었을 때, 그 눈은 너무도 밝고 투명해서 쳐다보는 것이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불꽃이 타닥 튀었다. 왼쪽 팔목이 마치 자의식이 생긴 것처럼 저릿거렸다. 비록 오래된 마법의 타오르는 듯한 차가움은 아직 없었지만. 표식에 손을 가져다 대지 않는 데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흠,” 덤블도어는 안락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으며 긴 양 손가락 끝을 맞댔다. “두 달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너무 이른 시기이긴 하지…”
세베루스는 한때 퀴렐의 몸이었던 쭈글쭈글한 덩어리를 떠올렸다. 그 뒤통수에 뚫려있던 커다란 구멍, 피투성이로 엉망진창 망가진 얼굴—그리고 그는 미소짓고 싶은 욕망을 억눌렀다. 덤블도어는 엄숙하게, 우리는 적의 죽음을 애도하는 일을 결코 멈춰서는 안 된다고 설파할 것이다. 그는 고결하고 감상적인 헛소리를 참고 들어줄 인내심이 없었다.
“그가 어떻게 도망쳤다고 생각하십니까?”
“내 생각에 그는 지금 영혼과 실체의 중간단계 그 어느쯤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 같네.”
세베루스는 그 자가 대체 어떻게 여태까지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는지가 더 궁금했다. 덤블도어가 나름의 가설을 세우고 있음은 알았지만, 그는 여전히 신비스럽고 영문을 알 수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망할 늙은이 같으니라고. “몸이 없이 영국을 지배할 수는 없죠.” 세베루스가 지적했다.
“물론,” 덤블도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그라고 해도 그건 불가능하지. 즉 조만간 그는 새로운 몸이 있어야 할 테지. 그가 어떤 모습을 취할 것 같은가?”
“무슨 뜻으로 물어보시는지 모르겠군요,” 세베루스는 말했다. “그가 거대한 지네 형상으로 돌아올 것 같다고 답하면 됩니까?”
덤블도어의 수염이 또 한 번 씰룩거렸다. 그는 차분하게 되물었다. “자네가 생각하기에, 볼드모트 경이—”
“그 이름을,” 그의 목소리가 거칠고 성마르게 들렸다. “입에 담지 마십시오.”
덤블도어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끔찍하게 동정적인 그 눈빛을, 세베루스는 견딜 수가 없었다.
“미안하네, 내 친구. 자네가 생각하기에, 톰이 이번처럼 다른 사람의 몸을 차지하려고 들 것 같은가?”
세베루스는 억지로 어둠의 군주에게로 생각을 돌렸다. 어리석은 인간의 뒤통수에 찍힌 창백하고 기괴한 흔적이었던 두 달 전의 모습이 아닌, 자신의 팔목에 어둠의 표식을 새기던 마법사에게로. 그 당시 어둠의 군주는 뼈처럼 새하얀 얼굴, 물에 스며든 피처럼 붉게 물든 눈, 흙처럼 검고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내게 헌신하겠느냐 , 세베루스? 내게 충성을 맹세하느냐? 너의 영혼을 내게 바치겠느냐?
그때 그 순간에조차, 그 감정은 사랑이 결코 변해서는 안 되는 무언가로 변해버린 것처럼 느껴졌다—결코 변해서는 안 되지만, 너무나 쉽게 변질되어 버리는 그 무언가로.
“그것은 임시방편이었을 뿐입니다.” 명멸하는 불빛처럼 기억이 물러가고 나서야 그는 답할 수 있었다. “퀴렐은… 약했죠. 어둠의 군주는 그를 이용하면서도 경멸했을 테고, 무슨 결과를 얻었든 간에 종국에는 그를 버렸을 겁니다. 그 누구도 자신을 담을 만큼 가치가 있다고 여기지 않을 테니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덤블도어가 중얼거렸다. “그는 자신만의 신체를 다시 가지고 싶어 하겠지.”
“신체를 재구성할 방법은 여럿 있습니다. 별로 애쓰지 않아도 서너 개는 떠오르는군요.”
지금 그를 쳐다보는 덤블도어의 표정은 익숙했다. 다만 그는 그 표정이 담고 있는 게 엄격함인지, 침통함인지, 아니면 흡족함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네크로맨시는 어둠의 마법 중에서도 한층 더 어두운 계열에 속했고 따라서 덤블도어가 더욱 강력하게 반대하는 것이었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그가 속한 빛과 선 진영에는 그에 관해 충분히 지식을 가지고 논할 만한 사람 자체가 별로 없었다. 세베루스를 제외하고는.
“그의 추종자들 가운데 또 누가 그 방법들을 알겠나?” 질문을 들은 세베루스는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했다. “많지는 않습니다. 벨라트릭스가 있겠군요. 루시우스는 마음만 먹으면 쉽게 알아낼 수 있겠지만, 단지,” 치마 속에 있는 것을 제외하고 “무언가를 연구하는 건 그의 관심사에 포함되지 않죠. 하지만 필요한 모든 지식은 어둠의 군주가 알고 있을 겁니다—그가 할 일은 도움을 줄 의향이 있는 추종자를 찾아내는 것뿐이죠.”
“아즈카반을 피해간 자들 중에서는, 몇 명이나…?”
“아즈카반을 피해간 자들 중에서는, 없습니다.” 세베루스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다만 벨라트릭스가 계속 얌전히 갇혀있기만을 바라야 할 겁니다.”
“그래,” 덤블도어가 동의를 표했다. “그래야지.” 그리고 그는 미소지었다. 어디로 보나 억지미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그 미소가 진심일 수 있는지 세베루스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 자네의 통찰력을 빌려주어서 고맙네, 내 친구. 오늘 하루 치의 어두운 얘기는 다 한 것 같군.”
세베루스는 그 뒤에 나오지 않은 말을 속으로 덧붙였다. 앞으로 수많은 낮과 밤들을 어두운 얘기로 보내게 되겠지만.
“새로운 수업계획서는 작성했나?” 덤블도어가 물었다. 그의 왼쪽 눈에는 특유의 반짝거림이 서서히 돌아오고 있었다.
“1981년에요.” 세베루스는 뻔뻔하게 답했다.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덜 저능해지기 전에는 바꾸지 않을 겁니다.”
“자아자아, 세베루스—아무리 자네라 해도 가끔은 인정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나? 자네의 학생들 중 최소한 한 명 정도는 대체로 지능이란 것을 가지고 있다고. 그레인저 양은 어떤가? 해리엇 포터의 친구 말이네.”
드디어. 세베루스는 결국에는 이 이야기가 나오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 계집애가 다른 네 명의 말썽꾸러기들과 함께 호그와트 급행열차에 올라탄 후, 여름 내내 덤블도어는 그녀에 대해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자제력이 오래가지 않으리란 것을 그는 진작부터 알았다. 물론 그는 미끼를 물지 않을 것이다. 덤블도어가 무슨 꾀를 부리든, 어떻게 그를 구슬리고 애원하든 간에, 그는 그 소녀에 대한 자기 생각을 입 밖에 내지는 않을 것이다. 덤블도어는 작년 한 해 동안 거듭해서 시도했지만, 세베루스는 언제나 냉정하게 화제를 돌릴 수 있었다—해리엇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세베루스? 오늘이 그녀가 처음 자네 수업을 들은 날이었지?
그는 아직도 그 첫 수업이 눈에 선했다. 1학년들을 처음으로 교실에서 마주할 때면 언제나 조금은 당혹스러웠다. 그들이 얼마나 어린지를 보고, 자신도 그렇게 어리고 아무것도 몰랐던 때의 기억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 애를 써야만 했기 때문이다. 마법세계는 너무나 좁고, 눈에 익은 얼굴들이 다른 이름을 가지고 계속해서 나타나곤 했다. 하지만 그 수업… 드레이코의 백금발과 조소를 머금은 얼굴은 루시우스의 축소복사판이었다. 그리고 그 소녀…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그 연회장의 흔들리는 촛불 불빛 아래에서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그는 생각했다. 포터. 뒤이어 밀려오는 강렬한 역겨움은 마치 감정이 실체를 가지고 뱃속에서 날뛰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녀는 제 아비와 똑같이 부스스한 머리와 똑같이 얄상한 얼굴을 가졌고, 거기에 안경과 교복이 더해지자 중성적인 이미지의 작은 제임스 포터가 되었다. 마치 제임스 포터가 죽음으로부터 살아 돌아와 세베루스가 두려워했던, 그리고 현실로 이루어졌던 결말을 끊임없이 되새기게 만드는 듯했다.
그 느낌은 다음 날 아침 마법약 시간에 다시 한 번 그를 찾아왔다. 포터와 똑같은 얼굴에, 출석부의 이름. 그는 지하의 어두침침하고 축축한 공간 속에서 그 소녀를 찾아내었고, 아마도 증오심을 감추지 않고서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을 것이다. 그녀는 불안하게 크게 뜬 눈으로 그를 마주 보았다. 물러서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움츠러든 채로, 마치 자존심과 자신의 안위를 동시에 챙기려는 듯한 태도를 하고서. 포터는 언제나 의기양양하게 잘난 척을 하고 다녔다. 움츠려야 할 필요 따위는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조차 알지 못했겠지.
세베루스는 그 느낌을 알았다. 이해했다. 그리고 그는 기억해냈다. 저 어딘가, 너저분한 검은 머리와 볼품없는 안경 뒤에서, 릴리의 눈동자가 그를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릴리 자신은 결코 그런 눈을 하지 않았을 텐데. 그녀는 그를 믿을 수 없다는, 역겹다는, 경멸하는, 혹은 무관심한 눈빛으로 바라보기는 했지만, 그 눈에 두려움이 깃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녀는 결코 그를 두려워할 만큼 자신을 낮추지 않았다.
그녀가 남긴 것은 이것뿐이었다. 이 작은 소녀, 괴상한 안경을 쓰고 그의 마법약 교실에 앉아 있는 커다란 눈망울의 소녀. 이것이, 그가 스물한 살일 때부터 자신의 미래를 바쳐 보호하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그가 죽인 두 사람의 이 작디작은 혼합물이. 릴리의 눈과 포터의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가.
해리엇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세베루스?
그녀는 릴리가 남긴 마지막 하나였고, 그는 그녀를 보호하기로 맹세했다. 그가 아는 건 그뿐이었다. 그것만 알면 충분했다.
어쨌든 그는 아이들이라면 질색이었으니까.
“그레인저 양은,” 이제 그는 덤블도어의 햇살 가득한 서재에 앉아 말하고 있었다—실감나는 연기를 위해, 입매를 끌어올려 비웃는 표정을 지으며—“다른 어린 괴수들만큼 멍청하지는 않더군요, 그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독창성이 없어요. 그리고 칭찬에 너무 목말라 있지요.”
덤블도어는 재미있어하는 듯했다. “슬리데린의 사감이 그걸 비난할 수 있나?”
“그렇게 대놓고 티를 내서는 안 되는 겁니다.”
덤블도어의 턱수염이 씰룩거리는 모양새로 보아 그는 활짝 웃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를 억누르기는 쉽지 않을 것처럼 보이네만?”
“부디 좀 억누를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스네이프는 짓씹듯 말했다. 그레인저의 과도한 열정이 담긴 과제물들은 안 그래도 길기만 한 6년을 더 길게 느껴지게 할 것이다.
“그처럼 강한 의지를 가진 친구는 포터 양에게도 큰 힘이 될 테지.” 덤블도어가 말했다. “라즈베리 스콘 어떤가, 세베루스? 디저트에는 손도 대지 않았군.”
그때 덤블도어의 책상 뒤편 어딘가에서 죽음을 맞이한 이가 내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의 불사조가 죽을 때가 된 것 같군요.” 그는 스콘을 받아들고 잘게 부수기 시작했다.
“불타오를 날이 머지않았지. 하지만,” 덤블도어가 안락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턱수염에 묻은 빵부스러기를 곱게 털어냈다. “지금 폭스는 먹이를 먹을 때 도움이 필요하다네. 일깨워줘서 고맙군.”
세베루스가 무어라 답하기도 전에 집요정 하나가 교장실 안에 나타났다. 손에는 일반 사이즈의 머글 우편봉투가 들려 있었다.
“덤블도어 교장선생님께 온 편지예요!” 집요정이 깊숙이 절하고, 봉투를 머리 위로 들어 보이며 외쳤다.
“대신 좀 받아주겠나, 세베루스?” 덤블도어가 자신의 불사조 위로 몸을 숙이며 물었다.
집요정은 무미건조한 흰색 종이봉투가 마치 고대 페르시아의 왕자에게 바치는 공물이라도 되는 양 고이 치켜들었다. 세베루스는 봉투를 집어든 손을 그대로 휘저어 집요정을 물러가게 했다.
“머글 우편이군요.” 집요정이 사라지자 세베루스는 봉투를 뒤집어 보았다. 그는 보낸 사람의 주소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레인저 양…이 보낸 겁니다.”
눈에 익은 단정한 손글씨를 보는 것만으로 그의 눈이 아려왔다. 그 빌어먹게도 길고 길던 작문들. 다음번에 그녀가 규정 분량을 1cm라도 초과한다면 점수를 왕창 깎고야 말리라.
“그레인저 양이?” 덤블도어는 진심으로 놀란 것처럼 들렸다. “그녀는 부엉이를 가지고 있을 줄 알았는데. 흠, 살다 보면 틀릴 때도 있기 마련이지. 열어서 읽어주겠나?”
세베루스는 봉투 끝을 찢어서 열고 편지를 꺼내 펼쳤다. 첫 문단의 중간쯤까지 읽었을 때, 그는 손에 쥔 빈 봉투를 와락 구겼다. 스스로의 격렬함에 놀랄 정도였다. 그는 자신이 이만큼 신경을 쓰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세베루스?” 덤블도어가 불렀다.
“이럴 줄 알았어.” 세베루스는 으르렁거리면서도 편지를 끝까지 읽었다. “이럴 줄 알았다고!”
“뭘 알았단 말인가, 내 친구?”
“페투니아.” 세베루스는 자신의 목소리에 섞여 나오는 악의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기억 속 페투니아의 목소리에서 묻어나던 악의와 비슷했다. 괴물들, 너희는 모두 괴물들이야. “그 아이가 마녀라는 걸 의심의 여지없이 확인한 다음부터는, 그녀의 해묵은 증오와 질투심이 되돌아오리라는 걸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말씀드렸잖습니까.”
실제로 그는 말했었다—릴리의 죽음이 가져온 비탄에서 간신히 헤어나온 직후에. 만약 마법을 증오하는 자기 언니가, 자신의 평범함을 너무나 혐오한 나머지 다른 누군가가 비범한 것을 견뎌낼 수 없었던 그 여인이 제 딸을 맡게 되었음을 알았다면 릴리가 어떤 얼굴을 했을지, 그는 상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곧이어 릴리가 그 사실을 결코 알 수 없으리라는 절망이 그녀의 어린 아이에 대한 걱정을 포함해 다른 모든 생각을 밀어내 버렸고, 그는 그 아이를 거의 잊다시피 했다. 최소한 직접적으로 기억하지는 못했다. 그 아이의 존재는 이따금 그의 머릿속에 표류해오곤 했다. 하지만 일상의 파도가 다시금 그녀를 밀쳐냈다—그의 후회와 자기혐오가 소용돌이치는 저 깊은 해저로.
덤블도어가 그들이 앉아있던 자리로 부스럭거리며 돌아왔다. “세베루스, 만약 해리엇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내가 알았을 거라네.” 그의 말은 너무도 온화하게 들려서, 세베루스는 교장실 안을 가득 메운 그리핀도르의 진홍색 한가운데에서 눈앞이 새빨갛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오?” 그는 잇새로 나지막하게 내뱉었다. “교장선생님, 해리엇이 제 편지에 단 한 번도 답장을 하지 않았어요. 론에게도요. 저는 해리엇에게 스무 번도 넘게 편지를 썼고 제가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그녀에게서 편지 한 장 받지 못했어요. 론이 제게 말해준 바로는 해리엇이 허가받지 않은 부유마법(Hovering Charm)을 써서 마법오남용관리처에서 경고장을 받았다고 하는데, 저는 너무나 걱정이 돼요. 저희는 부유마법을 배운 적도 없고, 그건 2학년이 되어서야 배우는 마법인데—”
그는 읽는 걸 멈추고, 덤블도어를 향해 눈을 가늘게 떴다. 덤블도어의 표정에서 그는 읽어낼 수 있었다. “마법부의 경고장에 대해 이미 알고 계셨군요.”
“마법부에 있는 내 친구들이 웬만한 정보는 전해주지. 알고 있었네.” 덤블도어는 침착하게 답했다.
“그래서요?” 세베루스는 그레인저의 편지가 무기라도 되는 것처럼 덤블도어를 향해 휘둘렀다. “이것에 대해서는 얼마나 정보를 가지고 계십니까?”
“자네는 페투니아 더즐리가 포터 양에게 친구들과 연락하는 것을 금지했다고 믿나?”
그것은 매우 옹졸하게 들렸고 따라서 정확하게 페투니아가 할 법한 일 같았다. 그녀가 저지른 일의 사소함에 비해 자신이 느끼는 분노가 터무니없이 크다는 것을 그 역시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기숙사 배정식 때 소녀의 모습을 기억했다. 웃으면서도 금방 웃지 말라는 말을 들을 거라고 예상하는 듯한 불안정한 미소, 먹으면서도 금방 음식을 빼앗길 것을 예상하는 듯한 모습. 그리고 수십 년 전 페투니아가 했던 말이 그의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너와 그 스네이프 녀석, 너희들은 괴물들이야, 괴물이라고—너희는 정상적인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야 해, 우리를 해칠 수 없도록.” 페투니아가 그처럼 앙심 섞인 폭언을 소녀의 머릿속에 반복해서 새겨 넣고도 남을 인간이라는 것을 그는 물론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소녀를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페투니아가 그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심하게 아이를 대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한 인간이 표출할 수 있는 잔인함이 그를 놀라게 한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심지어 자신은 하루가 멀다 하고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으로 소일하는 사람인데.
“페투니아가 그 아이의 눈앞에서 편지들을 불태웠다고 해도 저는 놀라지 않겠습니다.”
그때 덤블도어의 표정을 정확히 정의하기는 어려웠지만, 그 표정은 세베루스가 아홉 살일 적, 집에 가기가 너무 싫다고 릴리에게 고백한 직후 곧장 그 말을 다시 주워 담고 싶다고 느꼈던 순간을 떠올리게 했다.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세베루스?” 정의내리기 어려운 목소리로 덤블도어가 물었다.
“페투니아에게 겁을 주십시오,” 그는 조금의 비꼼도 섞지 않고 즉답했다. “아니면 제가 할 수 있게 해주시거나요.” 오, 그는 즐거이 그 일을 할 것이다… 그가 하고 싶은 만큼 페투니아를 겁박할 수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참아야 했었다…
덤블도어의 시선은 서재 건너편에 있는 캐비닛으로 향했다. 닫힌 그 문에는 포도덩굴 문양이 새겨져 있다. 그 안에는 기사단원의 사진들이—그들이 직접 찍어 보낸 사적인 사진들이—보관되어 있었다. 릴리의 것도 한 장 있었다. 세베루스는 릴리의 사진이 거기 있음을 알면서도 한 번도 보지 않았다. 그 사진에서 그녀는 분명 포터의 품에 안겨 서 있으리라. 어쩌면 결혼식 당일의 사진일지도 모른다.
아직까지도 고통스럽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여전히 아팠다. 그 아픔을 느끼는 자신이 스스로도 경멸스러웠다. 그는 그녀의 딸에게 시선이 갈 때마다 가슴 속에서 느껴지는 아픔을 잘라내 버리고 싶었지만, 작년 내내 단 한 번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군,” 덤블도어가 느릿하게 말했다. “그래, 나도 자네가 가봐야 한다고 생각하네.”
처음에는 자신의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뭐라고요?”
덤블도어가 그를 쳐다보았다. 그 얼굴은 일방통행 거울처럼 밝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자네가 더즐리 가에 가보는 것이 좋겠네.”
세베루스는 멍하니 앞을 보다가, 그의 찻잔을 집어 들고 그 안을 의심스럽게 살펴보았다. “이 차 안에 무엇이 들어 있었죠?”
“포터 양에게서 최근 소식을 들을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지.”
세베루스는 찻잔을 거칠게 내려놓았다. “제가 옛날 버릇을 되찾으면 어쩌려고 이러십니까?” 그는 날카롭게 물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른 사람의 집에 찾아가 그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것이 제 일이었는데 말이죠.”
덤블도어의 눈빛은 침착하고 한낮의 호수처럼 깊었다. “나는 그게 아주 오래 전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내 친구.”
어떤 일들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충분히 오래 전 일이 아닌 법이지, 세베루스의 머릿속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속삭였다.
“그들이 어디 사는지조차 제게 알려주신 적이 없잖습니까.”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덤블도어가 왜 허락해서는 안 되는지 증명하려고 애썼다. 왜 세베루스가 혐오하는 상대에게 잔인하게 굴지 못하도록 그가 저지해주어야만 하는지를.
“나는 자네를 믿네, 세베루스.” 덤블도어가 말했다.
단어 하나하나가 마치 쇠사슬 같았다.
슬리데린을 믿는 건 어리석은 일입니다, 교장선생님. “주소는요?”
덤블도어가 주소를 가르쳐 주었다.
나선형 계단을 내려오면서, 그는 그들의 우정을 망가뜨렸던 그 사건에 대해 릴리가 언니에게 얘기한 적이 있을지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저질렀던 그 모든 악행을 릴리가 페투니아에게 알려주었기를 기대했다.
* * *
“어쩌면 교도소용 문신을 하나 새기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어.” 해리엇이 말했다. “어떻게 생각해?”
헤드윅이 깃털을 부풀렸다.
“내 말에 동의하면 깃털을 이만큼 부풀려줘”—해리엇은 엄지와 검지 사이를 약간 벌려 보이고 나서, 다시 그 사이를 조금 더 넓게 벌렸다. “이만큼 부풀리면 동의하지 않는 걸로 알게.”
헤드윅은 날개 사이에 부리를 묻었다.
“그건 별로 도움이 안 된다구,” 해리엇은 헤드윅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말했다. 그녀의 부엉이는 우울하게 부엉부엉 울었다.
“알아,” 해리엇이 한숨을 쉬었다. “미안해, 정말로.”
그들은 더즐리네 집의 가장 작은 방 안에 갇혀 있었다. 문에는 추가로 몇 개의 빗장이 걸렸고 창문에는 창살이 달렸다. 원래는 헤드윅도 새장 안에 갇혀 있었을 것이나, 해리엇이 청바지 주머니 안에 있던 부러진 깃펜 끝으로 열쇠를 따주었다. 헤드윅을 밖에 내보내줄 수는 없었지만—덕분에 방에는 부엉이 똥 냄새가 진동을 했다—최소한 새장 밖으로 꺼내 주는 것이 해리엇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어차피 문신을 어떻게 새겨야 하는지도 모르니까.” 그녀는 헤드윅을 쓰다듬었다. 부엉이의 발톱은 침대 발판을 붙들고 있었는데, 그녀는 그 발톱이 자국을 남기지 않기만을 빌었다. 만약에 자국이 남는다면, 그녀가 무사히 9와 4분의 3 승강장 안에 들어갈 때까지 페투니아 이모가 발견하지 못하기만을 빌어야 할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그녀는 다시 창문의 창살과 그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보고, 버논 이모부가 뒤룩뒤룩한 보랏빛 얼굴로 소리쳤던 것을 떠올렸다. “다시는 그 학교에 돌아가지 못할 줄 알아라!…만약 네가 빠져나오려고 마법을 부린다면, 그들이 너를 퇴학시킬 테니까…”
“만약에 문신을 새긴다면 뭐로 할지는 정했어,” 그녀는 건조하게 중얼거렸다. “호그와트. 아마도 돌아가지 못할 테니까, 좋은 기념이 될 거야.”
헤드윅은 언짢은 듯한 노란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마치 오, 제발, 또 감정과잉 상태군 이라고 말하려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돌아가지 못한다면 그건 다 네 탓이야 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거기다가 그들이 우리를 여기 가둔 뒤로 제대로 된 식사 한 번 못한 것도 말이지 까지 포함되었을 수도.
마지막으로 먹은 식사는 차가운 깡통 수프 한 그릇이었다. 해리엇은 수프 안에 든 야채 건더기를 대부분 헤드윅에게 넘겨주었다. 헤드윅이 그들 둘 중에서 좀 더 죄가 없는 쪽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디저트 접시를 떨어뜨리고, 마법부 부엉이가 날아들어 그 멍청한 메이슨 부인을 놀라게 한 건 해리엇의 잘못이 아니었다. 다 그 빌어먹을 집요정 탓이었다.
도비. 그냥 도비. 집요정 도비. 그는 스스로를 그렇게 소개했다. 그 집요정을 만난 것만 해도 해리엇에게는 매우 기이한 경험이었는데, 그에 더해 누군가의 목을 짤짤 흔들고 싶으면서 동시에 불쌍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던 것 또한 대단히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녀는 도비를 만나기 전까지 더즐리 네에서 그녀가 받고 있었던 대우가 엄청 심하다고 생각했었다…
하. 도비의 처지도 처지지만 도비를 만난 후에 바뀐 그녀의 처지도 이제 만만치 않았다.
그녀는 도비에 대한 의문과 추측들을 헤드윅에게 털어놓았다. 호그와트에 존재하는 거대한 위험? 그게 대체 뭘까? 도비는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날 만난 적도 없는데, 왜 굳이 와서 위험을 알려주려고 한 걸까?
물론 헤드윅은 그녀의 질문들에 답해줄 수 없었고 깃털을 부풀리거나 졸기밖에 하지 않았지만, 해리엇에게는 얘기할 다른 상대도 달리 할 일도 없었다. 그나마 지금은, 얘기할 상대가 아무도 없는 것이 그녀가 프리벳 교도소에 갇혀있기 때문이지 친구가 없기 때문은 아님을 알아서 다행이었다. 도비가 그녀에게 온 편지들을 가로채고 있었던 것이다.
허마이니랑 해그리드랑 론이 걱정할 텐데. 최소한 그들이 걱정하고 있기를 해리엇은 바랐다. 그러면 그녀는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허마이니가 뭔가를 알아챌지도 몰라… 어떻게든 날 찾아내거나… 아니면 교수님들께 알린다거나… 하지만 그녀의 법적 후견인들이 그녀를 여기 가둬두고자 한다면 학교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해리엇은 확신할 수 없었다.
허마이니가 더즐리네 집 가장 작은 방에 찾아와 자신의 풍화된 유골을 발견하는 것까지 상상하고 있을 때, 해리엇은 방 밖의 복도에서 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벌써 저녁시간인 걸까? 위장이 배고픔을 너무나 강렬하게 호소하는 나머지 속이 메슥거릴 지경이었다. 페투니아 이모가 로스트치킨을 굽는 냄새를 벌써 몇 시간째 맡고 있는지 모른다. 물론 그녀는 한 조각도 얻어먹지 못하겠지만.
그 순간 문 밖에서 찰칵찰칵찰칵찰칵 하는 소리가 들려와 그녀는 황급히 자세를 바로 했다.
자물쇠들이 모조리 한꺼번에 열리고 있었다.
그녀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문을 응시했다. 그리고 잽싸게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마지막 자물쇠가 뜯겨지듯 열리면서 나무 조각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오는 것과 동시에 문이 안쪽으로 쾅, 하고 열렸기 때문이다.
배가 너무 고파서 헛것이 보이나. 문가를 막고 서 있는 어두운 형체는 마치 스네이프 교수처럼 보였다.
스네이프의 모습을 한 환상은 안으로 한 걸음 들어왔다. 그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해리엇은 그가 이렇게까지 화가 난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이처럼 화가 난 그 누구도 본 적이 없었다—그녀는 자신의 상상력이 꽤나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 스네이프 환상은 제법 무시무시했다.
그는 눈빛만으로 방 안의 모든 것을 해부하기라도 할 것처럼 방을 샅샅이 훑었다. 기울어진 옷장, 칙칙한 벽지, 지저분한 그녀의 침대, 헤드윅의 오물로 가득한 새장이 놓여 있는 책상. 그 눈빛이 그녀를 지나쳐 갈 때 그의 표정이 살짝 흔들렸지만, 그는 해리엇보다도 헤드윅의 새장을 노려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있었다. 그녀의 상상이니까 그녀가 아는 사실에 기반한 걸지도 모른다. 작년 내도록 스네이프는 거의 완벽하게 그녀를 무시했었다.
방을 둘러본 후 그가 뒤돌아섰다. 그가 떠난다고 생각하자 해리엇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비록 그녀가 미쳐가고 있는 증거라고 해도, 스네이프는 호그와트의, 마법세계의 일부인 존재였고, 그녀는 그 모든 것이 너무나 그리웠다.
하지만 그는 떠나려는 게 아니었다. 그는 문 아래쪽에 달린 작은 덮개를 쳐다보고 있었다—페투니아 이모가 해리엇이 먹을 음식을 던져넣어 주는 고양이문(cat flap)을.
그가 다시 돌아섰을 때, 그 얼굴에 떠오른 표정에 해리엇은 소름이 피부를 달려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한동안 그는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았는데, 그 눈빛이 너무나 강렬해서 마치 증오와도 같이 느껴졌다.
“네 물건들은 어디에 있지?” 그가 물었다. 수업시간과 똑같았다—속삭이는 듯한 목소리였지만, 그가 말하는 것 한 글자 한 글자를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마치 겨울처럼 귓속을 파고들었다.
“음… 학교 물건들이요?” 가늘고 높은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그가 아무 대답 없이 그녀를, 여전히 그 강렬하고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눈으로 바라보고만 있어서, 그녀는 재빨리 답했다. “어—아래층에, 계단 밑 벽장 안에요.”
“이 방에서 필요한 것들 챙겨서 나를 따라와라.”
스네이프 교수에게 왜냐고 물어서는 안 된다. 그가 시키면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게 나았다. 그녀는 몇 안 되는 블라우스와 바지, 양말과 속옷들을 챙겨 (속옷을 스네이프가 보지 못하도록 애쓰며) 오래된 머글 배낭에 쑤셔 넣고, 헤드윅을 새장 안에 넣으려고 돌아섰다. 다만 스네이프가 침대와 책상 사이에 서서 그녀의 길을 막았다. 그는 창문을 쳐다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창문 밖의 창살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해리엇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헤드윅을 달래 자신의 팔에 앉힌 후, 헤드윅의 발톱이 팔을 파고 들 때 바람막이를 입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스네이프가 헤드윅의 새장을 들어올려 밖으로 나갔다. 그의 로브 자락이 침묵 속에 휘감겼다.
침묵…
해리엇은 그를 따라 복도로 나와 귀를 기울였다. 아래층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들렸다. 자동차 광고인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람의 목소리나 움직임은 들을 수가 없었다. 페투니아 이모가 요리한 그레이비소스와 로즈마리의 냄새는 계단에서부터 맡을 수 있었다. 입에 침이 고이고, 허기와 갈망으로 배가 아렸다.
스네이프 교수는 벽장의 문을 마법으로 열고 그녀의 트렁크를 꺼내고 있었다. 그는 몸을 숙여 벽장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녀가 가진 게 그것뿐인지를 확인하려는 듯이.
“트렁크 안에 다 있을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음, 교수님. 방학한 다음부터 저는 그 안에 들어간 적이 없어요.”
“알겠다.” 스네이프가 벽장문을 너무 세게 닫은 나머지 집 전체가 흔들거렸다. 해리엇은 흠칫 몸을 떨었다.
그가 트렁크를 들어올리려고 몸을 틀 때, 그녀는 더즐리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 중이었다. 페투니아 이모가 와인잔을 넘어뜨려서, 와인이 식탁에 엎질러져 가장자리까지 흘러가 바닥의 카펫으로 똑똑 떨어졌다. 방금 전에 일어난 일인 듯, 와인은 아직도 떨어지고 있었다.
바닥에 점점 번지고 있는 얼룩, 그런데 페투니아 이모가 그걸 치우려고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녀를 오싹하게 만들었다.
해리엇은 천천히 스네이프를 지나쳐 식당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더즐리 가족들의 눈길이 그녀를 따랐다—크게 뜨인 채 깜박이지 못하고 있는 그들의 눈. 더들리의 포크는 그의 입속에 들어가 있었고, 포크를 쥔 손은 움직이지 못했다. 페투니아 이모의 손은 그녀가 와인잔을 넘어뜨렸을 때 그대로 허공에 멈춰 있었다. 버논 이모부는 의자 위에서 반쯤 몸을 돌려, 마치 일어날 것 같은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스네이프가 그를, 그들 모두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바로 그 순간에.
텔레비전에서 작게 흘러나온 웃음소리가 침묵 속에서 쨍하게 울렸다.
해리엇은 식탁으로 다가가며 더즐리 가족들의 눈을 한 사람씩 차례대로 마주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식탁 가운데 있는 접시에서 닭다리 하나를 집어 들고, 쿨하게 말했다. “다음 여름방학 때 봐요.”
복도로 나오자 스네이프가 현관문을 열고 서 있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그의 검은 눈동자가 번쩍였다.
“와라.” 그 목소리는 너무 차가워서 그 모서리에 닿으면 화상을 입을 것만 같았다.
해리엇은 닭다리를 입에 물고, 헤드윅이 제대로 앉아있는지 확인한 다음 그를 따라 밖으로 나섰다.
